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6세에 불과했던 시절, 무려 83세까지 천수를 누린 영조의 장수 비결을 파헤친다. 철저한 소식 습관과 거친 보리밥 위주의 소박한 식단이 현대 시니어의 건강에 던지는 묵직한 통찰을 확인해 본다.
왕조 국가에서 국왕은 당대 최고의 의료진인 내의원의 보살핌을 받으며 전국 팔도에서 진상된 진귀한 산해진미를 누리는 자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시대 27명의 왕들이 누린 평균 수명은 고작 46세에 불과했다. 왕좌가 주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궐내에 갇혀 지내는 운동 부족, 그리고 하루 다섯 번씩 어김없이 차려지는 기름진 수라상이 오히려 수명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단명의 덫을 유유히 피하고 무려 83세까지 생존하며, 52년이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을 버텨낸 왕이 있다. 바로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다. 숱한 당쟁과 암살 위협 속에서도 그가 꼿꼿하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산삼이나 녹용 같은 진귀한 보약이 아니었다. 매일 마주하는 밥상 위에 오르는 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평생을 지독하게 지켜낸 소식(小食) 습관, 이것이 현대 의학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영조만의 탁월한 생존 전략이었다.
수라상을 거부한 왕, 영조의 특별한 밥상
기름진 고기 대신 선택한 채식과 보리밥
조선의 임금에게 올려지는 수라상은 12첩 반상으로, 온갖 고기와 해산물이 총망라된 화려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영조는 이러한 기름진 고열량 식단을 멀리하고 거친 식감을 가진 보리밥을 곁에 두었다.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연명하기 위해 먹던 거친 밥을 지존의 자리에 있는 국왕이 평생 고집한 것이다. 이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어머니 숙빈 최씨로 인한 내면의 콤플렉스와, 굶주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하려는 애민 정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조는 고기가 듬뿍 들어간 탕이나 찜보다는 채소 위주의 담백하고 소박한 찬을 선호했다. 풍부한 식이섬유를 품은 보리밥과 신선한 채소는 장운동을 원활하게 하고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는 것을 막아준다. 50대 이후 시니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각종 대사 증후군을 예방하는 데 있어 영조의 밥상은 완벽하게 계산된 현대식 건강 식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루 다섯 끼를 세 끼로 줄인 파격적인 결단
보통 조선의 왕들은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먹는 초조반을 시작으로 조수라, 주다과, 석수라, 야참까지 하루 다섯 번의 식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가마를 타고 이동하며 신체 활동량이 턱없이 부족한 궁궐 생활에서 이는 고스란히 비만과 성인병의 지름길이 되었다. 영조는 오랜 관행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하루 세 끼만 정량으로 먹는 규칙적인 식습관을 단호하게 확립했다.
신하들이 옥체의 건강을 염려하며 더 드실 것을 간청하고 때로는 통곡까지 했음에도 영조는 자신의 식사 원칙을 절대 꺾지 않았다. 오히려 치열한 어전 회의 중에도 식사 시간이 되면 주저 없이 수라간으로 향할 만큼 끼니때를 엄격하게 지켰다. 생체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위장과 대사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군주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소식(小食), 몸을 비워 병을 막는 지혜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절제의 미덕
영조의 경이로운 장수 비결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이 바로 소식(小食) 습관이다. 그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배가 완전히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평생의 철칙으로 삼았다.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오랜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일 세 번 마주하는 밥상머리에서 혹독하게 실천한 셈이다.
나이가 들면 인체의 기초 대사량이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소화 효소의 분비도 줄어들어, 젊은 시절과 동일한 양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체중이 쉽게 불어난다. 영조는 소화 기관에 무리를 주지 않는 적절한 식사량을 평생 유지함으로써 체내에 불필요한 독소와 노폐물이 쌓이는 것을 막고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쉬게 했다. 이는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하는 장 건강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방어책이다.
현대 의학이 증명하는 소식의 항노화 효과
영조가 몸소 실천한 소식의 지혜는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최첨단 현대 의학을 통해 그 놀라운 가치가 명확하게 증명되고 있다. 세계적인 노화 및 장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평소 섭취하는 칼로리를 20~30%가량 줄이는 것이 노화를 지연시키고 수명을 연장하는 가장 확실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우리가 소식을 하게 되면 우리 몸은 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포 스스로 늙고 손상된 부분을 분해하고 수리하는 '자가 포식(Autophagy)' 시스템을 강력하게 활성화한다. 영조는 세포 단위의 과학적 원리를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노화를 늦추고 신체를 젊게 유지하는 궁극의 비결을 매일의 식탁 위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까다로운 입맛이 만들어낸 규칙적인 식습관
식사 시간을 엄격하게 지킨 내면의 통제력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독살의 위협을 느끼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즉위 후에도 탕평책을 펼치며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끊임없는 기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토록 가혹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도 그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잃지 않은 것은 무서울 정도로 철저했던 내면의 통제력 덕분이었다.
그는 산더미 같은 정무를 보다가도 정해진 식사 시간이 되면 반드시 수라를 들었다. 식사 때를 놓치면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속을 버리고, 결국 다음 식사에서 폭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스스로의 몸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식습관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고 자율신경계의 안정을 가져와, 거친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건강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고추장과 타락죽, 입맛을 돋운 영조만의 별미
평생 거친 소식과 채식을 고집하며 금욕적인 식생활을 했던 영조에게도 유난히 사랑했던 특별한 별미가 있었다. 바로 매콤한 고추장과 부드럽고 고소한 타락죽(우유를 넣어 끓인 죽)이다. 과중한 업무로 밥맛이 떨어질 때면 참기름을 살짝 두른 고추장에 꽁보리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았다.
고추장에 함유된 캡사이신 성분은 적당히 섭취할 경우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고, 귀한 식재료였던 타락죽은 노년기에 급격히 빠져나가는 단백질과 칼슘을 보충해 주는 훌륭한 영양식이었다. 단조로운 채식 식단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노년기에 꼭 필요한 영양의 균형을 놓치지 않은 것, 이것이 80대 노구에도 안경을 쓰고 꼿꼿하게 밤늦도록 정사를 돌볼 수 있었던 숨은 원동력이다.
조선 시대 절대 권력자였던 영조가 역사에 남긴 83세 장수의 기록은 진귀한 산해진미나 전설 속의 불로초가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마주하는 소박한 밥상 위에서 식탐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한 치열한 자기 관리의 찬란한 결과물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움이 오히려 질병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영조의 낡은 밥상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입에 달고 부드러운 음식은 결국 몸을 병들게 하고, 배를 터질 듯이 채우는 탐욕은 맑은 정신을 흐리게 만든다. 50대 이후 시니어의 건강과 삶의 질은 무엇을 얼마나 더 화려하게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용기 있게 덜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영조가 평생을 곁에 두었던 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숟가락을 일찍 내려놓는 소식의 지혜야말로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최고의 명의(名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