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자연환경과 모진 풍파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심리적 방파제 역할을 했던 장승과 솟대의 역사적 기원과 의미를 탐구한다. 단순한 민간 신앙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과 마음의 평안을 이끌어냈던 지혜를 통해, 현대 시니어 세대의 삶에 필요한 연대와 위로의 가치를 조명하는 교양 칼럼이다.
인적이 드문 옛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 어귀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에 주먹만 한 코, 그리고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들. 바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으로 대변되는 장승이다. 그 곁에는 기나긴 장대 끝에 나무로 깎은 새를 올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솟대가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인의 눈에는 그저 투박하고 낡은 나무 조각이나 미신적인 조형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자연재해 앞에 한없이 무력했던 옛 조상들에게, 마을 어귀에 우뚝 선 장승과 솟대는 단순한 조각상을 넘어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백신이자 안식처였다.
마을의 경계를 지키는 듬직한 파수꾼, 장승
두려움과 해학이 공존하는 천하대장군의 두 얼굴
장승은 본래 마을과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나그네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온갖 나쁜 기운과 잡귀, 그리고 전염병을 막아내는 영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장승의 얼굴이 마냥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툭 불거진 눈망울과 커다란 입은 겉보기에 위협적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촌로들의 소박하고 장난기 어린 웃음을 빼닮아 있다.
이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이 반영된 결과다. 두려운 존재인 역병이나 악귀를 험악한 인상으로 윽박질러 쫓아내면서도, 매일 장승을 마주해야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친근하고 든든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편안함을 주고자 했던 조상들의 탁월한 심리적 안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전염병과 액운을 막아내던 영적인 방어선
조선 시대는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역병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던 참혹한 시기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백성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때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거대한 장승은 그 자체로 거대한 위안이었다.
조상들은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 무서운 얼굴을 한 장승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에게 장승은 국가의 군대나 훌륭한 의사보다도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내일의 희망을 품게 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든든한 보호막이었던 셈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희망의 전령, 솟대
기러기와 오리에 담긴 풍요와 다산의 염원
장승이 땅의 나쁜 기운을 막아내는 수비수라면, 긴 장대 위에 앉은 솟대의 새는 하늘을 향해 마을의 소망을 전달하는 공격수이자 안테나 역할을 했다. 솟대 위에 앉혀진 새는 주로 오리나 기러기, 기러기 등 물새를 형상화한 경우가 많았다.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때맞춰 내리는 비, 즉 풍부한 수자원이었다.
물과 친숙한 철새들을 장대 높이 올려놓음으로써, 가뭄이 들 때 하늘에서 시원한 비를 내려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농심(農心)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한 번에 많은 알을 낳는 물새들의 습성처럼 마을의 여인들이 다산하여 노동력이 풍부해지고,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 쌓이는 풍요로운 삶을 향한 염원이 나무새의 날개깃마다 켜켜이 스며 있다.
신성한 구역을 알리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통로
솟대의 기원은 아득히 먼 삼한 시대의 '소도(蘇塗)'라는 신성한 구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죄인이 도망쳐 들어가도 잡아갈 수 없었을 만큼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소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았는데, 이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민간의 솟대로 정착한 것이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는 예로부터 지상에 사는 인간과 하늘에 있는 신을 연결해 주는 유일하고도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졌다. 고된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솟대를 바라보며 조상들은 팍팍한 가슴속에 맺힌 한과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냈을 것이다.
모진 세월을 견디게 한 공동체의 심리적 연대
가난과 자연재해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결속력
장승과 솟대가 지닌 가장 위대한 가치는 단순히 개인의 기복을 비는 대상을 넘어, 마을이라는 끈끈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나 특정한 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신분과 빈부의 격차를 떠나 모두 한자리에 모여 낡은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고 솟대에 정성스레 옷을 입히는 동제(洞祭)를 지냈다.
이러한 마을 제사는 단순히 귀신을 달래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넘기고 다가올 한 해의 농사를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의 결속을 다지는 성대한 축제이자 화합의 장이었다. 나무를 베어오고 조각을 내는 힘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조상들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공동체의 힘으로 분산시키고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매년 치러지는 동제를 통한 묵은 갈등의 치유
장승제를 지내는 날에는 평소 서운했던 감정이나 묵은 갈등도 제사상에 올린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시원하게 씻어 넘겼다. 신성한 수호신 앞에서 서로 헐뜯고 다투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어떤 훌륭한 갈등 조정 프로그램보다도 강력한 심리 치유의 효과를 발휘했다.
보릿고개의 극심한 굶주림과 양반들의 가혹한 수탈 속에서도 조선의 백성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밝은 웃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선 장승처럼 든든하게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승과 솟대를 매개로 철저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거친 세월의 파도를 넘었다.
현대 시니어의 삶에 던지는 묵직한 위로와 성찰
콘크리트 숲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수호신
오늘날 우리는 장승과 솟대가 지키던 흙길 대신 삭막하고 차가운 아파트의 콘크리트 숲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의학의 발달로 과거 조상들이 겪었던 굶주림이나 전염병의 공포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현대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지독한 고독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철저하게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마음을 기대고 삶의 위안을 얻을 심리적 장승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가족과 사회를 위해 청춘을 바쳐 일하고 이제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하는 5070 시니어 세대에게, 조상들이 장승과 솟대 앞에서 나누었던 따뜻한 연대감은 깊은 향수와 깨달음을 동시에 안겨준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웃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랐던 장승의 해학적인 미소처럼, 이제는 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주변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성숙한 어른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로가 서로의 솟대가 되어주는 삶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결코 인생의 완전한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마을을 지켜낸 낡은 장승과 솟대처럼, 오랜 연륜과 지혜를 갖춘 시니어 세대 스스로가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젊은 세대와 이웃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이정표이자 수호신이 되어줄 수 있다.
홀로 견디는 슬픔보다 함께 나누는 희망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지, 우리 조상들은 장승과 솟대라는 가장 소박하고도 거룩한 상징물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 마을 어귀에도, 헛된 욕심은 비워내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안부와 기도가 하늘로 곧게 뻗어 오르는 마음의 솟대 하나쯤 정성스레 세워보면 어떨까.